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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외설을 예술로 만드는 힘 ‘절실함’에 대하여 | 2014년 05월 22일 10시 50분 16초
조회수 : 695  

영화 속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둘러싸고 종종 일어나는 논란 중 하나가 바로 ‘외설이냐 예술이냐’이다. 예술과 외설, 둘 사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 어떤 이는 “원초적 욕구만을 자극하면 외설, 미적 가치를 추구하면 예술”이라고 있어 보이게 구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진짜로 (섹스)하면 예술, 시늉만 하면 외설”이라 무식하게 구분하기도 한다. 예술과 외설을 일도양단하긴 어렵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무지막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쌀이냐, 떡이냐’와 같은 복잡 미묘한 종류의 질문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 쌀(외설)인 동시에 떡(예술)일 수 있는 것이다.

섹스를 예술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작품 속에 녹아있는 절실함(desperation)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똑같은 이유로, 불륜을 사랑이게 만드는 것도 절박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 대표 ‘불륜 전문 배우’라 할 만한 량차오웨이(梁朝偉)가 주연한 ‘화양연화’ 속 불륜과 ‘색, 계’ 속 노골적인 섹스가 모두 예술로 평가되는 이유는 도덕적으론 정당하지 못한 남녀의 관계가 구토가 쏠릴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희생자일 수밖에 없는 시대의 쓸쓸하고 두텁고 외로운 공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질식해 가는 남녀의 애욕과 섹스는 우리를 치명적으로 설득하고 마는 것이다.

14일 개봉한 송승헌 주연의 ‘인간중독’을 보고 나서 나는 ‘영화 속 유부남(송승헌) 유부녀(임지연)의 섹스는 불륜인가 사랑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사랑은 못 되고 그냥 불륜이다.

‘화양연화’의 미학과 ‘색, 계’의 파격적 섹스, 그리고 두 영화 속 고독하고 일그러진 시대성을 롤 모델로 한 듯한 이 영화는 베트남전의 전쟁영웅이지만 살육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군 장교 김진평(송승헌)이 이웃 관사에 사는 부하 장교의 젊은 화교 아내 종가흔(임지연)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매우 진부하지만 보고 싶어 미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제대로 된 섹스 장면은 딱 세 번인데, 이 세 번은 체위별로 깔끔하게 분류된다.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은 내게 묻는다. ‘야해?’ 난 답한다. ‘야해. 근데 지루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속 주인공 김진평은 ‘인간중독’이기보단 ‘섹스중독’으로 보는 편이 맞다. 시나리오가 당초 설계하고 의도한 바와 달리, 영화 속 여인은 남자가 느끼는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구원자로 다가오기보단 몸 끝내주고 얼굴 끝내주는 이웃집 유부남을 꾀려 안달이 난 맹한 새댁으로만 느껴진다. 이름부터 흥분되는 ‘종가흔’이란 이 여자는 기대와 달리 왜 이리도 “왜 이렇게 가슴이 뛰죠? 손잡아서 그런가? 식사할 때 이 손 만지고 싶어요” “아닌 거 같아요. 우리 이러는 거” 같은 한심한 수준의 대사만 날리느냔 말이다.

이렇게 절실하지 못한 대사가 절실하지 못한 연기와 만나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나는 영화에 빨려들기는커녕 ‘다음 섹스는 또 언제 나오지?’ 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애욕덩어리 아저씨로 변신해갈 뿐이었다. 절박함이 휘발되었기에 이웃집 유부녀와의 섹스를 운명적 사랑이라 생각하며 목숨을 거는 송승헌의 모습은 처절하고 고독하고 치명적이기보다는 덜떨어지고 생뚱맞고 안타깝게만 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는 더 진중하고, 더 사려 깊고, 더 도발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여간해선 보기 힘든 톱스타의 섹스 장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영화는 관람료만큼의 가치가 있다. 송승헌의 놀랍도록 견고하고 은혜로운 엉덩이, 그가 입은 희고 타이트한 팬티, 그리고 격렬하게 섹스할 때 그의 목에 걸린 군인 인식표가 함께 흔들리며 탄생하는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는 후끈할 만큼 매혹적이다. ‘탤런트’였던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 ‘쌍화점’ 같은 유하 감독의 작품을 통해 ‘영화배우’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빙우’ ‘무적자’ 같은 영화에서 영 자리를 잡지 못하던 송승헌은 김대우 감독의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던져버리고 불살라버리는 예술가로서의 비전을 조금은 보여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랐던 것은 노골적이고 지루한 이 영화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괴수영화 ‘고질라’를 따돌리고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미성년자는 볼 수 없는 ‘19금’이란 핸디캡까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 섹스가 괴수를 물리쳤다.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섹스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섹스에는 어떤 배경도, 부조리도, 왜곡도, 설명도, 실망도, 책망도, 음모도, 의리도 없다. 섹스는 그저 섹스일 뿐. 그만큼 우리는 지금 우울한 것이다. 부조리한 이 순간이 우리를 더욱 본능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논리와 이성(理性)으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고단하고 미친 현실을 우리는 잊고 싶고, 탈출하고 싶다. 우린 그래서 괴수보다 섹스를 원한다. 섹스에게로 도망하길 원한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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