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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아들딸들아, 어른들을 용서하지 말거라 | 2014년 04월 24일 10시 25분 34초
조회수 : 1841  
지금껏 본 영화 중 내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영화는 아마도 중국 펑샤오강 감독의 ‘대지진’일 것이다. 1976년 중국 탕산(唐山) 대지진을 담은 이 영화엔 한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사연이 나온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딸과 아들이 모두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렸다. 한쪽 슬레이트를 걷어내면 다른 한쪽이 내려앉는 상황이다. 어머니는 두 아이 중 하나만을 살려낼 수 있다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는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이후 어머니는 딸을 가슴에 묻은 채 스스로에게 평생 저주를 퍼부으며 살아간다. 대지진 후 30년이 흐른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어머니를 찾아온다. 딸을 다시 만난 어머니의 첫 마디가 터져 나오는 순간, 내 마음이 찢어졌다.

“딸아, 나를 결코 용서하지 말거라.”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로 꽃다운 아이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낸 이 땅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는 “우리를 결코 용서하지 말거라”이리라. 영화 속 어머니가 늘 자책하며 던지는 말처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그걸 잃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슴에 묻었고, 이제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며 질이 나쁜 어른임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 마리아는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땐 다른 창문을 꼭 열어 놓는다”고 했건만, 아직까지도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나는 세상의 모든 멋진 말들이 실제론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소 ‘의리’란 단어가 세상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의리가 워낙 없기 때문이고, ‘권선징악’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것도 세상엔 권선징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살신성인’이란 그럴 듯한 경구가 전해 내려오는 것도 실제론 살신성인이 멸종에 가까울 만큼 드물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이런 생각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더욱 굳어졌다.

세상엔 ‘의리’란 것도, ‘살신성인’이란 것도, ‘리더십’이란 것도 단어로만 존재할 뿐이다. 물속으로 사라져가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가장 먼저 구조선에 올라탄 선장을 보고 있노라면 “리더는 결코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는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진정성(integrity)과 용기(courage)”라며 목이 터져라 외쳤던 영화 ‘여인의 향기’ 속 알 파치노의 대사가 오히려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려온다. 이제 우리는 ‘영혼 팔아먹기’ ‘가식’ ‘비겁’을 ‘캡틴’의 필수덕목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판이다.

매일 매일 집단우울증 속에서 악몽 같은 하루를 사는 우리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해주는 것은 세상의 종말을 다룬 영화 ‘더 로드’에 나오는 이런 한마디일 것이다. “나쁜 꿈을 꾸었다는 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 영화에서 아들과 함께 세상의 끝을 향해 속절없이 걷고 또 걷는 아버지. 그는 천신만고 끝에 당도한 남쪽바다 역시 더이상 푸른빛이 아님을 깨닫고는 “내가 만약 신이라면, 세상을 이것과는 다르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절망하며 숨져간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마지막 숨을 다해 이런 말을 남긴다. “아들아, 계속 길을 가거라. 남쪽으로 가거라. 계속.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렴.”

동정 없는 이 세상은 때론 우리를 막다른 절벽의 끝까지 몰아붙인다. 희망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는 절망과 죽음이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는 고통의 길을 다시 걸으라고 아들에게 말한다. 고통과 절망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뜨거운 증거라고 아버지는 믿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어 걷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길을 걷기를 멈추지 않기에 희망은 생겨난다. 기적은 생겨난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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