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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제발 나 좀 내버려둬, 렛 잇 고 | 2014년 02월 13일 15시 43분 16초
조회수 : 1175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국내 800만 관객을 돌파해 이젠 1000만 관객까지 바라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영화평론가들과 ‘최종 관객 수 알아맞히기’ 내기를 하면 승률이 8∼9할에 이를 만큼 놀라운 ‘촉’을 가진 나로선 ‘초등학생 정도면 좋아하겠다’고 여긴 이 만화에 20대 여성들이 감동 먹고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주제곡인 ‘렛잇고(Let it go)’가 국내 음원차트 1위에 오를 만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상은 더욱 놀랍게만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면 등장인물이 죽어 없어진다’는 비난을 받았던 막장 드라마 ‘오로라공주’를 보면서도 ‘마마’(오로라의 전 남편)가 교통사고로 죽는 대목에서 눈물을 분수처럼 뿜어낼 만큼 놀라운 감성을 가진 나이지만 “이 노래만 다시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나려 한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 중년 남자에게 이 영화와 주제곡이 왜 그리 감동적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말했다.

“‘렛잇고’란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라고. 완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노래인 것만 같아 가슴이 찡해져. ‘그냥 그대로 둬(렛잇고). 그냥 둬. 어차피 더는 수습할 길도 없으니. 그냥 둬. 그냥 둬. 신경 안 쓸래. 뭐라고 그들이 얘기하든. 맞는 것도, 틀린 것도, 규칙도 내겐 없어. 난 자유로워!’란 가사가 끝내주지 않아?”

정말 그럴 만도 했다. 한때 굴지의 대기업에 수석으로 입사할 만큼 명석했던 그는 대리 시절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를 뛰쳐나와 ‘진정한 꿈을 찾겠다’고 독립했다가 쫄딱 망한 뒤 수년째 집에 있다. 직장 다니는 아내의 경제력에 의지해 아침이면 된장찌개 끓이며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그의 삶도 결코 아름답지 아니한 삶이 아니건만 그는 늘 자존심이 구겨진다는 자격지심에 고통받아 왔다. 그러던 그가 초등생 자녀의 손에 이끌려 극장에 가 ‘렛잇고’의 영어가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북받쳐 오른 것이다. ‘그래. 인생엔 규칙이 없는 거야. 그냥 둬. 그냥 둬.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안 쓸래. 난 자유로워.’ 이 영화의 영어 버전을 자막 없이 볼 만큼 영어에 능통한 그는 공맹에도 통달한 인물. 이윽고 그는 “가사를 듣는 순간 내 삶이 새롭게 해석되었다. ‘힐링’이 됨은 물론이고 무위(無爲)와 중용(中庸)의 도까지 느껴졌다”고 오버해서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 여중생의 반응이었다. 국영수는 그저 그렇지만 암기력은 좋아 암기과목 달달 외워서 전교 10등 안에는 꼭 드는 이 여중생은 “엄마가 ‘렛잇고’의 가사를 좀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했다.

“생각해 보세요. 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지만 ‘겨울왕국’은 과거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 같은 애니메이션과는 질적으로 달라요. 인어공주도 그렇고 야수도 그렇고 모두 자신에게 걸렸던 저주가 풀리면서 행복한 삶을 찾게 되는 결말이잖아요? 하지만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는 손대는 모든 사물이 얼음으로 변해버리는 ‘저주’가 끝끝내 풀리지 않아요. 그저 그 저주를 저주라 생각하지 않고 하늘이 내린 특별한 재능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행복한 삶을 되찾는 거지요.”(여중생)

여중생은 그러면서 “그러니까 엄마도 나를 자꾸만 개조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 여중생은 요즘 검은색 삼선 추리닝 상의에 검은 패딩 조끼, 검은 뿔테 안경, 민트색 배낭가방, 스타킹인지 바지인지 도무지 구분하기 힘든, 하지정맥류에 걸릴 만큼 미친 듯이 몸에 달라붙는 스키니바지를 고집하는 ‘일진’ 스타일의 패션감각으로 엄마와 갈등 중이었던 것이다. 여중생은 ‘우뇌형’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방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면서도 오히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자기를 낳은 장본인은 엄마 자신인 만큼 딸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항변하였다.

아, 이 여중생이 전교 1등을 해도 모자람이 없는 놀라운 인식의 세계를 가졌다고 감탄한 나는 여중생의 엄마에게 “이런 놀라운 생각을 하는 딸이 대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엘사처럼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고 싶다. 잘 씻지 않는 남편도, 말 더럽게 안 듣는 딸도 안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깨달았다. 히트하는 영화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아. 이것이야말로 바로 나의 이야기야’라는 내밀한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는 영화란 사실을 말이다. 폭넓은 ‘아전인수’가 가능한 영화 속 이야기에 대중은 뜨겁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렛잇고! 안 씻고 더럽게 살아도 돼. 렛잇고! 바람 피워도 돼. 렛잇고! 시험은 막 봐도 돼. 렛잇고! 회사 때려치워도 돼…. 어쩌면 ‘렛잇고’란 말은 ‘수업시간에만 충실하면 100점 받을 수 있다’는 말처럼 불변의 진리인 동시에 실현 불가능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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