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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소녀와 사랑에 빠진 좀비가 왜 바보스러운 걸까 | 2013년 05월 15일 11시 27분 06초
조회수 : 1952  
좀비 영화의 대부인 조지 로메로 감독이 14일 개봉된 ‘웜 바디스’란 영화를 본다면 성질을 못 이겨 스크린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밥’을 시작으로 이른바 ‘시체 3부작’을 만든 로메로는 좀비란 존재를 현대사회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적 은유로 삼았다. 인간에 의해 잔혹하게 제거되는 좀비는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절망 섞인 비유였고, 대형 쇼핑몰을 흐느적거리며 배회하는 좀비들의 모습은 소비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오늘날의 인간을 아프게 꼬집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무슨 영화란 말인가? ‘웜 바디스’는 요즘 속어를 쓰자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에 가깝다.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좀비라니…. ㅠㅠ 10대를 위한 달콤한 기획 상품임에 틀림없는 이 영화는 ‘얼짱’ 좀비가 긴 생머리의 어여쁜 소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 버리면서 종(?)을 뛰어넘는 위험한 사랑에 나선다는, 기가 막히고 코도 막히는 얘기다. 이 영화가 금지된 사랑이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랜 설정을 좀비 영화에 갖다 붙였다는 사실을 제 아무리 감안한다 하더라도, 도대체 납득할 수 없다. 좀비에게 인간은 그저 ‘식량’일 터. ‘예쁜 돈가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터무니없는 얘기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은 ‘R’란 이름의 남자 좀비가 소녀 ‘줄리’의 남자 친구를 먹어치우는 순간에 있다. 남자 친구의 뇌를 파먹으면서 그 남자 친구의 기억을 갖게 된 좀비는 소녀와 더욱 깊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인 것이다. 뇌를 먹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흡수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원숭이 골을 먹는 일부 인간은 바나나를 따 먹으며 따사로운 햇살을 즐겼던 해당 원숭이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고스란히 갖게 된다는 말인가. 식량으로서의 뇌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일 뿐. 오히려 ‘단백질이 풍부한 인간의 뇌를 먹은 좀비가 돌연 끓어오르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여 무한 번식에 나선다’고 하는 편이 과학적으로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설정이 아닐까 하는 미친 생각도 해 본다.

한층 더 황당한 일은 좀비와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 소녀의 태연한 태도다. 수년간 사랑해 온 남자 친구를 좀비가 김밥 먹듯 한입에 먹어 버렸는데도, 소녀는 좀비에게 “그럴 줄 알았어”라는 한마디를 새침하게 던지고는 금세 남자 친구를 기억의 저편으로 내동댕이쳐 버린 채 남자 친구를 잡아먹은 좀비와 발랄한 사랑에 빠지다니!

여기에 이르러 나는 이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적 변주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요즘 신세대 남녀에 대한 고차원적 은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쿨’하게 남자 친구를 갈아타는 주인공 소녀의 모습이야말로 신세대 청춘의 진면목은 아닐까.

게다가 툭하면 “배고파 죽겠어”, “먹을 거 가져오란 말이야”, “집에 가고 싶어” 하며 징징대며 투정 부리는 소녀를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음식도 구해 주고, 춤도 추고, ‘쎄쎄쎄’ 하며 손뼉치기놀이도 해 주고, 심지어 BMW 스포츠카까지 태워 주면서 시종 멍청한 표정으로 “제발 같이 있어 줘” 하고 애원하는 남자 좀비야말로 한 달간 밤새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여자 친구 명품 가방 사 주고는 두 달 만에 헌신짝처럼 차이는 요즘 청년들의 가련한 뒷모습은 아닐까 말이다. 어쩌면 여자 친구에 목을 매는 좀비의 얼빠진 표정은 스타에게 1억 원이 넘는 외제 자동차를 ‘조공’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갖다 바치면서 짝사랑에 빠지는 요즘 일부 열혈 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여우 같은 여자 친구를 몸 바쳐 사랑하는 요즘 청년들이야말로 좀비보다 더 좀비적인 바보천치요 얼뜨기가 아닐까 말이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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