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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은교’를 훔쳐보고 싶은가 | 2012년 05월 01일 15시 37분 38초
조회수 : 1819  
노출의 디테일 ‘꿈틀’… 상상의 나래 속 관객들 ‘비틀’


“그대 새끼발톱이 날 설레게 해. 그대의 아홉 번째 척추가 날 미치게 해 좋아요. 어렴풋이 드러난 세 번째 갈비뼈가, 무릎에 연골과 복숭아뼈, 탱글탱글 광대뼈 너무 좋아요∼.”

아, 이 무슨 변태 같은 내용이란 말인가. 밴드 ‘버스커버스커’가 최근 발표한 ‘이상형’이란 제목의 노래 가사다. 물론 이 정도로 여자친구의 신체를 부위별로 뜯어보는 남자라면 여자친구의 좁쌀만 한 새끼발톱에 키스하면서 ‘으헤험’ 하고 황홀경에 빠지는 변태일 공산도 적잖지만, 여하튼 이토록 여자친구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또 감사히 여기는 상태로 볼 때 남자는 그녀의 영혼마저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 디테일은 그 자체로 열정이고 힘이고 메시지인 것이다.

나는 정지우 감독의 신작 ‘은교’를 보면서 버스커버스커의 이 노랫말을 떠올렸다. 일흔 살 노(老)시인이 어느 날 한 발랄한 여고생 ‘은교’를 알게 되면서 그녀의 청춘을 탐하고 자신의 늙음을 저주한다는, 저질스러운 듯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이 영화에는 도착에 가까운 디테일한 묘사 속에 등장인물(또는 그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등장인물)의 움직이는 내면을 붙잡아 넣는 정지우의 특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할아버지뻘 되는 시인의 흔들의자에 앉아 쌔근거리며 낮잠을 자는 은교의 첫 등장. 흙이 살짝 묻어 더러운 듯 더욱 순결해 보이는 은교의 발바닥에서부터 하얀 목선을 지나 입술까지 훑어 올라가며 그녀를 묘사하는 대목에선 통속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관철하려는 한 예술가의 자아가 읽힌다.

‘해피엔드’로 화려하게 장편연출 데뷔를 한 정지우가 이후 ‘사랑니’와 ‘모던보이’로 흥행에선 신통찮았던 이유는 사랑에 관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집요하게 말하려 들면서도 그것을 끝까지 단정하려 들지 않는 그의 의도적으로 모호한 예술관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은교’에선 분명 과거 영화들에서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부분이 있지만, 결국 그는 디테일을 통해 얻어지는 극단의 사실성으로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며 종국엔 관객을 더욱 자유롭게 해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은교’ 속 신체노출을 나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중 여고생으로 설정된 은교(실제 은교를 연기한 여배우 김고은은 올해 21세다)가 노시인의 제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굳이 그녀의 체모까지 적잖은 시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그런 노골적인 묘사가 굳이 필요한가’라고 묻는 것은 ‘너 그렇게 못되게 살아도 되겠니’라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빠져나갈 구멍이 별로 없는 질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시인이 두 남녀의 정사를 목격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의 시점쇼트(카메라가 시인의 시점이 되어 대상을 본다는 의미)라는 사실이다. 은교를 아끼는 동시에 탐했던 노인의 내면은 은교의 가장 ‘여자다운’ 부분을 충격적일 만큼 구체적으로 목격할 때 그 배신감과 황망함과 쓸쓸함이 최고에 이르지 않을까 말이다. 디테일에 관한 한 절제와 더불어 과잉도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다.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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